728x90
반응형

비 오는 로마에서의 산책

2023.04.15

 


 두바이에서의 날씨는 정말 좋았다만, 로마에서의 첫날은 우중충하고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리 많이 오는 비는 아니었다만, 활주로가 조금 젖어있었고, 비행기에서부터 창문에 빗방울이 튀기 시작하고 있었다.

 

로마 FCO 공항

 

 로마 FCO 공항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자동 입국 심사가 됐고, 여권을 찍고 얼굴 사진을 찍고 바로 패스가 됐다. 유럽의 입국 심사는 꽤 느긋하다고 들었는데, 자동 입국 심사 때문인지 도장을 찍어주는 직원은 정신없이 도장을 찍고 있었고,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이탈리아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자, 유럽에서 사용 가능한 USIM 칩 교체는 비행기 안에서 끝냈고, 이제 숙소까지 가는 길만 남았는데, 이 과정이 그다지 만만치는 않다. 가장 쉬운 것은 공항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는 것이겠지만, 이탈리아의 택시비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비쌌고, 당장 알고 있던 이동 방법은 셔틀버스였지만, 블로그 등에서 찾아본 후기에선 짐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분실의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글이 큼지막하게 쓰여있었던 것을 볼 때, 만만치 않을 듯했다.

 

 해외여행에서 가장 든든한 친구인 구글 맵은 지하철인지 기차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 무언가를 타라고 하였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매표기에서 표를 끊었는데, 아... 너무 가까운 시간대의 표를 끊는 바람에 숨 돌릴 틈 없이 기차역으로 뛰어가게 됐다. 늦을까 봐 뛰어가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인데, 기차 출발까지 15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라 앞 뒤로 배낭을 메고 뛰었다.

 

 기차역에 들어서서 직원에게 "It's right!?"을 연신 물어보며, 늦지 않게 기차에 타는 것에 성공을 하였고, 나 이외의 영국인으로 보이는 여행객 무리와 점잖은 이탈리아 할아버지와 친화력 높아 보이는 할머니 등이 열차에 올랐다. 이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건 것은 아니다만, 이 영국인 무리들과 내가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쉬지 않고 수다를 떨어주셔서, 심심치 않게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어찌나 서둘렀는지 공항에서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기차 사진도 찍질 못했다. 확실히 외국에 오긴 한 건지 아파트나 주변 식물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다만, 기차 안에서 방심하지 못하겠는 것이 소매치기 같은 게 문제가 아니고, 열차에서 지금 역이 어딘지 방송이 나오지를 않으니, 잘못된 역에서 내릴까 봐 구글 지도만 쭉 보고 있어야 했다.

 

Roma Trastevere에서의 풍경

 

 Roma Trastevere에 내리니 많지는 않지만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여기서부터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로마에서는 표를 담배 가게나 길거리의 작은 부스 등에서 판매한다고 하여,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이동을 하며, Tabacco 또는 Tobacco 라 쓰인 가게를 찾아다녔다.

 

우중충 하긴 했지만, 제법 마음에 들었던 풍경이었다.

 

 확실히 유럽에서는 우산을 많이 쓰질 않아서 그런지, 비가 제법 날리는 데도 그냥 맞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제법 되었고, 위 사진의 맨 오른쪽 건물을 살짝 돌자, 담배 가게가 보였다. 우리나라의 편의점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구멍가게처럼 크기는 매우 좁았고, 덩치 큰 이탈리아 형씨가 가게를 보고 있었다.

 

 1.5유로에 버스 티켓 한 장을 끊으러 들어갔고, 주말이라 그런 것인지 한국처럼 복권을 사러 온 사람이 제법 되었다. 버스 티켓 한 장을 사서 바로 버스를 타로 이동했는데, 습기 가득한 이 가게의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이 이제 와 생각하니 조금 아쉬웠다.

 

우중충한 로마의 길거리

 

 버스를 타러 가는 중에 경찰 둘이 이 비 오는 날씨에 인도 한 복판에 대짜로 누워있는 양반에게 화를 내며 일으키려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탈리아에서 약 7~8년 전부터 소매치기의 왕국 로마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경찰과 군인을 상당수 투입했다더니, 가장 쉬운 먹잇감 중 하나인 1인 자유 여행자로선 나쁘진 않은 일이긴 하다.

 

 버스를 탄 것까진 좋은데, 기차에서처럼 알람이 울리질 않는다. 그나마 기차에선 모니터로 글을 띄워주기라도 했는데, 버스엔 그런 것도 없어서, 이거 USIM 칩을 한국에서 사 오길 정말 잘했다. 빗발이 제법 거세지는지 창 밖 너머로 우산을 든 사람과 우의를 입은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로마의 캄피톨리오(Campidoglio) 광장의 계단과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조각상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주 멋있고 큰 이름 모를 조각상 둘이 반겨줬는데, '이 것이 로마인가!'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충분했다. 버스 하나에서 내렸다고 이렇게 있어 보이는 조각상이 보이다니 시작이 나쁘지 않은 듯하다. 

 

 구경을 좀 하고 싶긴 했는데, 빗발이 점점 늘고 있었고, 우산이 가방 깊숙이 어딘가에 있었기 때문에 그 비를 모조리 맞고 있는 중에 그럴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산타 마리아 인 아라코엘리 성당과 조국의 제단(옆 모습)

 

 눈길을 돌리니 거기에도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규모의 건물이 더 있었는데, 비를 맞고 있는 상황임에도 사진 찍는 것을 멈출 수가 없는 건물들이었다.

 

조국의 제단(옆 모습)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름 모를 거대한 건축물이 조금 걷고 다시 돌아서 사진을 찍고, 조금 걷고 다시 사진을 찍는 행동을 반복시켜 주었고, 어느 정도 만족한 후에야 구글 지도를 보며, 숙소로 다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비가 오는 중인 로마 길거리

 

 비가 한창 오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장씩 건질 수 있었는데, 오래된 건축물이 많아서인지 보수 중인 곳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길이 상당히 좁고, 울퉁불퉁한 돌로 길이 만들어져 있어서 트렁크 대신 배낭만 2개를 메고 온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약한 숙소인 오시아눔 궁전(Historic Hosianum Palace)에 도착하였다. 중년의 이탈리아 남성 분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Check-in을 하였고, 그분은 로마의 지도가 필요하지 않냐 물으며 하나를 꺼내주었다. 곧이어 그 지도의 중요 지점들에 펜으로 줄을 쭉쭉 그어, 어떤 동선으로 다니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괜찮은 레스토랑들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었다.

 

 숙소는 판테온과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고, 판테온을 기준으로 위쪽은 엄청 비싸니 거기서는 커피 한 잔 사 먹지 말라며 당부를 주었다. 그리고 밥은 좌측 하단의 동그라미 쪽에 가격도 훨씬 저렴하고 맛도 좋은 레스토랑이 많으니 무조건 거기서 밥을 먹으라고 알려주었다.

 

 숙소 주인 분의 따뜻한 환대와 친절한 안내를 받고, 4층에 있는 방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 우산을 꺼내고, 슬리퍼를 신으려고 숙소 구석구석을 찾아봤으나, 한국과 달리 침대에서도 신발을 신는다고 하는 유럽인들이어서인지 슬리퍼가 어디에도 없었다.

 

 한국처럼 숙소에 기본적으로 슬리퍼를 비치해 둘 줄 알았더니, 일단 슬리퍼도 살 겸 해서 가볍게 산책을 하러 나가봤다. 비행기에서 가이드북을 열심히 읽어보긴 했으나, 로마 쪽에 워낙 내용이 많아서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기도 했고, 생각 없이 사전 답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비오는 로마 시내, 어디에든 유적지의 흔적이 보인다.

 

로마에서 처음으로 본 성당(Chiesa di San Giuliano dei Fiamminghi)의 돔

 

Largo di Torre Argentina(1)

 

 숙소 밖으로 조금 걸어 나오자 큰 길이 나왔고, 숙소의 직원분이 그려준 길을 따라가니 성당의 큰 돔과 넓은 유적지가 보였다. 비와 오랜 비행 탓에 춥고 피곤하긴 했다만, 제법 마음이 설렜다.

 

 Largo di Torre Argentina*는 출입은 불가능했으나, 내부를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고, 당연히 무료였다. 

 

Largo di Torre Argentina(2)

 

Largo di Torre Argentina(3)


Largo di Torre Argentina*: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광장 중 하나로, 로마 공화당 사원과 폼페이우스 극장 유적으로 이루어져 있음. 폼페이우스 극장 유적 입구에 있었던 Pompey Curia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암살당했다고 함. 2019년 로마 시장은 이곳의 주변에 산책로를 설치해 일반 대중이 볼 수 있게 하였으며, 역사적인 가치 외에도 고양이 대피소가 존재하는 것으로 유명함.


 

 Largo di Torre Argentina의 옆에 있던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6유로짜리 쪼리를 하나 산 후, 숙소로 다시 돌아가 잠깐 정비를 한 후 산책을 이어 가기로 마음먹고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